「비사불우부(悲士不遇賦)」
「비사불우부(悲士不遇賦)」
전한(前漢) 사마천(司馬遷, 약 140~80 BC)
❖-해제
정확한 저작 연대는 알 수 없고, 사마천이 말년에 지었다고 추측된다.
선비가 뜻을 펴지 못하고 선이 악을 이기는 현실에 대한 실망과 회의에서 나온 글이다.
사마천은 이를 ‘몸 안에 해독이 생긴다’고 하였다.
따라서 통달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것을 다짐하면서, 도가의 ‘순응자연’의
지혜로 화와 복을 초월한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 역주
悲. 슬프다.
夫士生之不辰, 선비가 태어난 것이 때가 맞지 않아
愧顧影而獨存.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있음이 부끄럽다.
恒克己而復禮,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기에 한결 같았고
懼志行之無聞, 뜻과 행실이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했으나,
諒才韙而世戾, 진실로 재능이 훌륭해도 세상과 어듯나
將逮死而長勤. 장차 죽음에 이르도록 내내 수고롭기만 하다.
雖有行而不彰, 비록 행실이 있어도 드러나지 않고
徒有能而不陳. 그저 능력만 있을 뿐 펼치지 못한다.
何窮達之易惑, 어찌하여 곤궁과 영달에 쉽게 반응하고
信美惡之難分. 진실로 선악은 분별하기 어려운가.
時悠悠而蕩蕩, 시간은 끝없이 아득하게 흐르는데
將遂屈而不伸. 장차 결국은 굽힌 채 펴지 못하리.
使公於公者, 공적인 데서 공정하게 하는 사람은
彼我同兮, 그와 내가 같으나
私於私者, 사적인 데서 사사롭게 하는 사람은
自相悲兮. 내 스스로 그를 슬피 여긴다.
天道微哉, 하늘의 도는 은미하니
吁嗟闊兮. 아! 멀기도 하구나.
人理顯然, 사람의 생리는 분명하니
相傾奪兮. 서로 겨루고 뺏는다.
好生惡死,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才之鄙也, 재질이 비루한 것이고
好貴夷賤, 부귀를 좋아하고 빈천을 얕잡아 보는 것은
哲之亂也. 지혜가 어지러운 것이다.
昭昭洞達, 밝게 통달해야
胸中豁也, 마음이 넓어지니,
昏昏罔覺, 어두운 채 깨달음이 없으면
內生毒也. 안으로 해독이 생긴다.
我之心矣, 내 마음은
哲已能忖, 지혜로운 사람이 결국은 헤아릴 수 있고,
我之言矣, 내 말은
哲已能選. 지혜로운 사람이 결국은 가려낼 수 있으리라.
沒世無聞, 세상을 마치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古人唯恥. 옛사람들은 부끄러워했지.
朝聞夕死, 아침에(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데
孰云其. 누가 그것을 나쁘다고 할 것인가.
逆順還周, 역경과 순경은 돌고돌아
乍沒乍起. 갑자기 없어졌다 갑자기 나타난다.
無造福先, 복의 선두로 나아가지 말고
無觸禍始. 화의 시작을 건드리지 말라.
委之自然, 자연에 맡기면
終歸一矣. 끝내는 하나[도(道)]로 돌아가리라.
출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