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정을 가라앉히는 부와 서문「한정부병서(閑情賦幷序)」

노년의 인생 2024. 8. 28. 15:09

감정을 가라앉히는 부와 서문

「한정부병서(閑情賦幷序)」

❖-해제

‘한정(閑情)’은 ‘감정을 막다’, ‘감정을 가라앉히다’의 뜻이다.

이 글은 도연명이 팽택령을 그만두고 돌아와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의 감정을 다스려 이성적 경지로 가고자 하는 노력을 비유로 들어,

이상의 추구가 좌절된 상황에서 혼란한 마음을 돌려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글로 볼 수 있다.

❖- 역주

서문

初張衡作定情賦, 전에 장형이 「정정부(定情賦)」를 지었고

蔡邕作靜情賦, 채옹이 「정정부(靜情賦)」를 지었는데,

檢逸辭而宗澹泊, 아름다운 사조를 절제하고 담백함을 중시하여

始則蕩以思慮, 처음에는 여러 생각으로 흔들렸지만

而終歸閑正. 끝내는 고요함과 반듯함으로 돌아갔다.

將以抑流宕之邪心, 장차 이것으로 분방한 사심을 억제하고자 하였으니

諒有助於諷諫. 진실로 풍자에 도움이 있었다.

綴文之士, 글을 짓는 선비들이

奕代繼作, 대대로 이어서 창작하였으니

並因觸類, 모두가 이런 것들에 촉발되어

廣其辭義. 그 글의 뜻을 넓혔다.

余園閭多暇, 내가 전원의 집에서 여가가 많아

復染翰爲之. 다시 붓을 적셔 이것을 짓는다.

雖文妙不足, 비록 문채의 아름다움은 부족하나

庶不謬作者之意乎. 바라건대(예전) 작자들의 뜻을 그르치지 않았으면 한다.

본문

夫何瓌逸之令姿, 저 얼마나 아름답고 빼어난 자태인가,

獨曠世以秀群. 홀로 세상에 없이 무리에서 빼어났네.

表傾城之艶色, 성을 기울게 할 아름다운 미모를 드러내며.

期有德於傳聞. 덕이 있다고 소문나기를 바라는구나.

佩鳴玉以比潔, 울리는 구슬을 차고 깨끗함을 비기며,

齊幽蘭以爭芬. 그윽한 난초와 나란히 하여 향기를 다투네.

淡柔情於俗內, 부드러운 마음을 세속에서 담백하게 하고,

負雅志於高雲. 높은 구름보다도 우아한 뜻을 가졌구나.

悲晨曦之易夕, 새벽빛이 쉽게 저녁 되는 것이 슬프고,

感人生之長勤. 인생이 내내 수고롭기만 함에 감개가 이네.

同一盡於百年, 모두가 하나같이 백년 내에 사라지는데,

何歡寡而愁殷. 어찌하여 즐거움은 적고 근심은 많은가.

褰朱幃而正坐, 붉은 휘장 걷고 반듯하게 앉아,

汎淸瑟以自欣. 맑은 거문고 소리 울리며 스스로 즐기네.

送纖指之餘好, 가는 손가락으로 여운 있는 아름다움을 전하고,

攘皓袖之繽紛. 흰 소매 너울너울 펄럭이네.

瞬美目以流盼, 아름다운 눈 깜박이며 흘긋 쳐다보고,

含言笑而不分. 말과 웃음이 머금으니(말인지 웃음인지) 구분되지 않는구나.

曲調將半, 곡조가 막 반쯤 연주되었는데,

景落西軒. 해는 서쪽 창에 떨어지네.

悲商叩林, 쓸쓸한 가을바람은 숲을 두드리고,

白雲依山. 흰 구름은 산에 걸려 있다.

仰睇天路, 고개 들어 하늘 길 바라보고,

俯促鳴絃. 고개 숙여 거문고 소리 재촉하네.

神儀嫵媚, 기색과 모습은 아름답고,

擧止詳姸. 움직임은 차분하고 곱구나.

激淸音以感余, 맑은 음을 격동시켜 나를 감동시키니,

願接膝以交言. 바라건대 무릎을 가까이하여 말이라도 나눴으면.

欲自往以結誓, 직접 가서 맹세를 맺고자 하나,

懼冒禮之爲諐. 예를 무시하여 허물이 될까 두렵구나.

待鳳鳥以致辭, 봉황을 기다려 말을 전하려 하나,

恐他人之我先.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앞설까 두렵네.

意惶惑而靡寧, 뜻은 두렵고 당황하여 편안치 못하고,

魂須臾而九遷. 혼은 잠시 동안에 아홉 번이나 바뀌네.

願在衣而爲領, 상의(上衣)에서는 옷깃이 되어,

承華首之餘芳, 화려한 머리의 짙은 향기를 받들기 바라나,

悲羅襟之宵離, 비단옷이 밤에는 헤어짐이 괴롭고,

怨秋夜之未央. 가을밤이 끝나지 않음이 원망스러워라.

願在裳而爲帶, 하의(下衣)에서는 띠가 되어,

束窈窕之纖身, 곱고 가는 몸을 두르기 바라나,

嗟溫凉之異氣, 따뜻하고 서늘함에 기후가 달라져,

或脫故而服新. 혹시 옛것을 벗고 새것을 입을까 괴롭네.

願在髮而爲澤, 머릿결에서는 기름이 되어,

刷玄鬢于頹肩, 흘러내린 어깨의 검은 머리를 빗기 바라나,

悲佳人之屢沐, 미인이 자주 머리를 감아,

從白水以枯煎. 깨끗한 물을 따라가 말라 버릴까 괴롭네.

願在眉而爲黛, 눈썹에서는 눈썹먹이 되어,

隨瞻視以閒揚, 시선을 따라 우아하게 들려지기 바라나,

悲脂粉之尙鮮, 연지분이 선명하여,

或取毁于華妝. 혹시나 화려한 단장을 훼손할까 괴롭네.

願在莞而爲席, 왕골에서는 자리가 되어,

安弱體于三秋. 가을날에 약한 몸을 편안케 하기 바라나,

悲文茵之代御, 문채나는 깔개가 받들기를 대신하여,

方經年而見求. 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찾아질까 괴롭네.

願在絲而爲履, 실에서는 신발이 되어,

附素足以周旋, 흰 발을 따라 움직이기 바라나,

悲行止之有節, 가고 머묾에 제한이 있어,

空委棄於牀前. 그저 침상 앞에 버려질까 괴롭네.

願在晝而爲影, 낮에는 그림자가 되어,

常依形而西東, 항상 몸을 따라 왕래하고 싶지만,

悲高樹之多蔭, 높은 나무가 그늘이 많아,

慨有時而不同. 때에 따라 함께 하지 못할까 괴롭네.

願在夜而爲燭, 밤에는 촛불이 되어,

照玉容於兩楹, 두 기둥 사이에서 옥 같은 얼굴 비치고 싶으나,

悲扶桑之舒光, 동방에 햇빛이 퍼져,

奄減景而藏明. 갑자기 빛이 사라지고 밝음이 가려질까 괴롭네.

願在竹而爲扇, 대나무에서는 부채가 되어,

含凄飇於柔握, 부드러운 손에 서늘한 바람을 머금게 하고 싶으나,

飛白路之晨零, 흰 이슬이 새벽에 내려,

顧衿袖以緬邈. 옷소매 돌아보며 멀어질까 괴롭네.

願在木而爲桐, 나무에서는 오동이 되어,

作膝上之鳴僸, 무릎 위에서 울리는 거문고가 되기 바라나,

悲樂極以哀來,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와서,

終推我而輟音. 끝내는 나를 밀어내고 소리를 그만둘까 괴롭네.

考所願而必違, 바라는 바를 살펴봄에 반드시 어긋나,

徒契契以苦心. 부질없이 근심하며 마음을 괴롭히네.

擁勞情而罔訴, 힘든 마음을 간직한 채 하소연할 곳 없어,

步容與於南林. 걸음이 남쪽 숲에서 머뭇거리네.

栖木蘭之遺露, 목란에 남아 있는 이슬 받기도 하고,

翳靑松之餘陰. 청송의 짙은 그늘에 가려지기도 하네.

儻行行之有覿, 혹시 가고 가다 만나 볼 수 있을까 하여,

交欣懼於中襟. 마음속에 즐거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네.

竟寂寞而無見, 끝내 쓸쓸히 만나지 못하고,

獨悁想以空尋. 홀로 간절한 생각으로 그저 찾기만 하네.

斂輕裾以復路, 가벼운 소매 걷고 길을 되돌아오면서,

瞻夕陽而流歎. 석양을 바라보고 길게 탄식하네.

步徙倚以忘趣, 걸음은 머뭇거리며 나아가기를 잊고,

色慘悽而矜顔. 안색은 처참히 괴로운 모습이네.

葉燮燮以去條, 나뭇잎은 우수수 가지에서 떨어지고,

氣凄凄而就寒. 기온은 싸늘하게 차가워지네.

日負影以偕沒, 해가 그림자를 실은 채 함께 사라지고,

月媚景於雲端. 달이 구름 가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네.

鳥悽聲以孤歸, 새는 슬픈 소리로 홀로 돌아가는데,

獸索偶而不還. 짐승은 짝을 찾느라 돌아가지 않는다.

悼當年之晩暮, 젊은 나이가 저물어 가는 것이 슬프고,

恨玆歲之欲殫. 이 해가 끝나려는 것이 한스럽네.

思宵夢以從之, 생각은 한밤중의 꿈에서도 따르고,

神飄颻而不安, 정신은 흔들리며 안정되지 않네.

若憑舟之失櫂, 배를 탔는데 노를 잃어버린 것과 같고,

譬綠崖而無攀. 절벽을 오르는데 잡을 것이 없는 듯하다.

于時畢昴盈軒, 이때 필성과 묘성이 창에 가득하고,

北風凄凄, 북풍은 차가운데,

烱烱不寐, 말똥말똥 잠 못 든 채,

衆念徘徊. 뭇 생각만 오락가락 한다.

起攝帶以伺晨, 일어나 허리띠 두르고 새벽을 기다리는데,

繁霜燦於素階, 닭은 깃을 거둔 채 아직도 울지 않는데,

鷄斂翅而未鳴, 닭은 깃을 거둔 채 아직도 울지 않는데,

笛流遠以淸哀. 피리 소리가 맑고 애처롭게 멀리 퍼진다.

始妙密以閑和, 처음에는 오묘하고 세밀하여 한가롭고 평화롭다가,

終寥亮而藏摧. 끝에서는 맑게 퍼지니 슬퍼지네.

意夫人之在玆, 생각건대 그 여인이 이곳에 있으면,

託行雲以送懷. 가는 구름에 부탁하여 마음을 보내련만.

行雲逝而無語, 가는 구름은 멀어지며 말이 없고,

時奄冉而就過. 시간은 어느 새 흘러가 버렸네.

徒勤思以自悲, 부질없이 생각을 괴롭히며 스스로 슬퍼하나,

終阻山而帶河. 끝내는 산에 막히고 강에 둘러싸였네.

迎淸風以祛累, 맑은 바람을 맞이하여 얽매인 것을 떨어내고,

寄弱志以歸波. 흘러가는 물결에 나약한 마음을 보내리라.

尤蔓草之爲會, 「야유만초(野有蔓草)」의 만남을 허물하며,

誦邵南之餘歌. 「소남」의 전해지는 노래를 읊으리라.

坦萬慮以存誠, 온갖 생각을 평온하게 하고 참됨을 간직하여,

憩遙情于八遐. 팔방으로 멀리 달리는 감정을 쉬리라.

출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