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風 聲 鶴 唳

노년의 인생 2013. 7. 2. 19:12
風 聲 鶴 唳
(바람 풍, 소리 성, 학 학, 울 려)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

아무것도 아닌데 공연히 놀라 겁을 먹음.


동진(東晉) 효무제(孝武帝)의 태원(太元) 8년 진제(秦帝) 부견(符堅)은 스스로 병
 
 60만, 기마 27만의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떠나 밀물같이 진(晉)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진(秦)은 왕맹(王猛)을 기용함으로써 급속히 발전하여 제일의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그 왕맹이 죽으면서, "진(晉)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견이 진을 공격한 것은 그후 8년이 지나서였다.
 
진(晉)은 재상 사안(謝安)의 동생 사석(謝石)을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으로 삼고,
 
조카인 사현(詞玄)을 선봉도독으로 삼아 8만의 군세로써 진(秦)의 대군을 맞이했다.

 

먼저 현(玄)의 참모 유뇌지(劉牢之)는 정병 5천을 이끌고 낙각(洛澗)에서 진(秦)의
 
 선봉을 격파하고 장수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사현 등도 더욱 용감하게 전진했다.
 
부견(符堅)이 수양(壽陽)의 성에 올라 진군(晉軍)을 바라보니 진영이 질서정연했다.
 
무심코 팔공상(八公山) 쪽으로 눈을 돌리니 산은 진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짝 놀라서 다시 보니 그것은 풀과 나무였다. 순간 그는 불안을 느꼈다.
 
진군(秦軍)이 비수 언덕에 진을 치고 있어 진군(晉軍)은 건널 수가 없었다.

 

사현은
군사를 보내 진(秦)의 진지를 조금 후방으로 퇴각시켜 진군(晉軍)을 건너게 한 뒤
 
 승부를 결정하자고 정중히 청했다.
 
부견은 '우리 군을 약간 뒤로 물러서게 했다가 적이 반쯤 건넜을 때 격멸해 버리리
 
라.'고 생각하고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런데 진(秦)의 군세는 뒤로 물러서라는 신호를 받자 계속 퇴각하여 이제 정지시
 
킬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자 사현의 군대가 강을 건너 계속 추격해 들어와 진군(秦軍)을 궤란상태에 빠
 
뜨리고 말았다. 진병들은 앞선 자를 밀어젖히고 자기가 먼저 도망치고자 밀고 밀리
 
면서 자기편끼리 밟고 밟혀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잔뜩 겁을 먹은 진(秦)의 병사들은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기만 해도 진군
 
(晉軍)이 추격해 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그저 도망갈 뿐이었다.
 
전연의 장수였던 모용수는 이 기회를 타 군사를 모아 다시 연(燕)나라를 일으키고
 
 수도를 중산(中山)에 두었다. 역사상 이 나라를 후연(後燕)이라 부르며 비수의 대
 
전이 끝난 2년(385) 후의 일이었다

'고사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邯 鄲 之 步  (0) 2013.07.02
匹 夫 之 勇  (0) 2013.07.02
暴 虎 憑 河  (0) 2013.07.02
飽 食 暖 衣  (0) 2013.07.02
蒲 柳 之 姿  (0) 201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