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관련작품
「방도공구택 병서(訪陶公舊宅 幷序)」
당(唐) 백거이(白居易)
❖-해제
당(唐) 원화(元和) 11면(816년), 백거이 45세에 도연명의 고택을 방문하고 지은 것이다.
「서문」에서,“지금 여산에 유람 왔다가 시상을 지나 율리를 방문하였다.
(今遊廬山, 經柴桑 過栗里.)” 라고 한 데서, 당시 도연명의 고택은
율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역주
서문
余夙慕陶淵明爲人, 내가 일찍부터 도연명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往歲渭上閑居, 옛날에 위수(渭水)가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嘗有效陶體詩十六首. 도연명의 시체(詩體)를 본뜬 16수의 시를 지은 적이 있었다.
今遊廬山, 지금 여산에 유람 왔다가
經柴桑, 시상을 지나
過栗里. 율리를 방문하였다.
思其人,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訪其宅, 그의 옛집을 찾으니
不能黙黙, 말이 없을 수 없어
본문
垢塵不汚玉, 때와 먼지도 옥을 더럽히지 못하고,
靈凰不啄羶. 신령스러운 봉황은 비린 것을 먹지 않는다.
鳴呼陶靖節, 아아! 도정절 선생은,
生彼晋宋間, 저 진(晋)나라와 송(宋)나라 시기에 살면서
心實有所守, 마음속에 진실로 지키는 바 있었으나,
口終不能言. 입으로 끝내 말해 내지 못했다.
永惟孤竹子, 내내 고죽군의 두 아들 생각하였으니,
拂衣首陽山. 옷 떨치고 수양산으로 갔다지.
夷齊各一身, 백이와 숙제는 각기 다른 사람인데,
窮餓未爲難. (똑같이)곤궁과 배고픔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先生有五男, 선생도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與之同飢寒. 그들과 함께 굶주리고 추웠지.
腸中食不充, 뱃속에는 먹은 것이 부족했고,
身上衣不完. 몸 위에는 입은 것이 허술했다.
連徵竟不起, 조정에서 계속 불러도 끝내 나서지 않았으니,
斯可爲眞賢. 이야말로 진정한 현자라고 할 만하다.
我生君之後, 내가 선생의 후대에 태어나
相去五百年, 서로 떨어진 것이 오백 년이나 되지만,
每讀五柳傳, 매번「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볼 때마다,
目想心拳拳.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사모한다.
昔嘗詠遺風, 옛날에 일찍이 그 유풍을 읊조려,
著爲十六篇, 16편의 시를 지었는데,
今來訪故宅, 이제 찾아와 옛집을 둘러보니,
森若君在前. 엄연히 선생이 눈앞에 계신 듯하다.
不慕樽有酒, 술동이에 술이 있던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不慕琴無絃. 거문고에 줄이 없던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慕君遺榮利, 선생이 영달과 이익을 초월했던 것이 그리운데,
老死此丘園. 이곳의 언덕에 늙어서 잠드셨구나.
柴桑古村落, 시상의 오래 된 촌락과,
栗里舊山川, 율리의 옛 산천에,
不見籬下菊, 울 아래 국화는 보이지 않고,
但餘墟中煙. 다만 마을의 연기만 남아 있다.
子孫雖無聞, 후손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族氏猶未遷. 같은 성씨는 아직도 살고 있다.
每逢姓陶人, 도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마다,
便我心依然. 나도 하여금 마음속에 그립게 하는구나.
출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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