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집서(陶淵明集序)」
남조 양(梁) 소통(蕭統·501~531)
❖-해제
도연명이 생전에 남긴 시문들은 도연명 사후 백여 년이 지나
소통에 의해 문집으로 편찬되었다.『도연명집』은 현재 전하지 않고 이「서문」과
소통이 편찬한 「도연명전(陶淵明傳)」만이 전한다.
「서문」에서 소통은 도연명의 인품과 그가 남긴 시문에 대해 칭송하고 말미에서,
“내가 평소에 그의 글을 애호하여 손에서 놓지 못한 채, 간절히 그 덕을
생각하면서 동시대에 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그래서(흩어진 서문들을)모으고 교감하여 대략적으로 편목을 구분해 놓는다.”라고
『도연명집』을 편찬한 내력과 과정을 서술해 놓았다.
夫自衒自嫫者, (선비가)자신을 자랑하고(여인이)스스로 배우자를 구하는 것은
士女之醜行, 선비와 여인의 추한 행실이고,
不忮不求者, (남을)해치지 않고(남의 것을)탐하지 않는 것은
明達之用心. 사리에 통달한 이의 마음가짐이다.
是以聖人韜光, 이 때문에 성인(聖人)은 빛을 감추고
賢人遁世. 현자는 세상을 피해 산다.
其故何也? 그 까닭이 무엇인가?
含德之至, 덕을 지님이 지극한 것은
莫踰於道, 도를 넘어서는 것이 없고,
親己之切, 자신과 가까움이 절실한 것은
無重於身. 몸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故道存而身安, 그러므로 도가 보존되면 몸이 편안하고,
道亡而身害. 도가 없어지면 몸이 해를 받는다.
處百齡之內, 백 살 안쪽에 살면서
居一世之中, 한 세상에 머무니,
倏忽比之白駒, 빠르기는 백마에 비유되고
奇遇謂之逆旅. 얹혀사는 곳은 여관이라고 한다.
宜乎與大塊而盈虛, 마땅히 대자연과 더불어 번성하였다가 쇠퇴하고,
隨中和而任放, 중용과 화합을 따라 자유로워야 할 것이니,
豈能戚戚勞於憂畏, 어찌 근심하면서 걱정과 두려움 속에 힘들어하고,
汲汲役於人間. 쫓기면서 세속에 부림을 당할 것인가.
齊謳趙女之娛, 제(齊)나라 노래와 조(趙)나라 미녀의 즐거움,
八珍九鼎之食, 여덟 가지 진미와 아홉 가지 솥의 음식,
結駟連騎之榮, 네 마리 말을 멘 수레와 줄지은 기마의 영광,
侈袂執圭之貴, 넓은 소매의 관복에 홀을 드는 존귀함이
樂旣樂矣, 즐겁기는 즐거워도
憂亦隨之. 근심이 또한 뒤따른다.
何倚伏之難量, 어찌하여 화와 복은 헤아리기 어렵고,
亦慶弔之相及. 또한 경사와 흉사는 서로 뒤따르는가.
智者賢人居之, 지혜로운 자와 현자는 처신하는 것이
甚履薄氷, 얇은 얼음을 밟듯이 심히 조심하는데,
愚夫貪士競之, 어리석은 자와 탐욕스러운 선비는 경쟁하는 것이
若洩미려. 미려에 바닷물 새듯이 세차다.
玉之在山, 옥은 산에 있어도
以見珍而終破, 진귀함을 드러내 결국 쪼개지지만
蘭之生谷, 난초는 골짜기에서 자라나
雖無人而自芳. 비록 보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향기롭다.
故莊周垂釣於濠, 그러므로 장주는 호수(濠水)에서 낚싯줄을 드리웠고
伯成躬耕於野, 백성자고는 들에서 몸소 밭을 갈았으며,
或貨海東之藥草, 어떤 이는 해동의 약초를 팔았고
或紡江南之落毛. 어떤 이는 강남의 낙모(落毛)를 짰다.
譬彼鵷雛, 비유하자면 저 원추가
豈競鳶鴟之肉, 어찌 올빼미가 잡은 고기를 다툴 것이며
猶斯雜縣, 또한 이 잡현이
寧勞文仲之牲. 어찌 장문중의 제수(祭需)를 고맙게 여겼겠는가.
至于子常·寧喜之倫, 자상·영희의 무리와
蘇秦·衛鞅之匹, 소진 위앙의 부류에 이르러서는
死之而不疑, 죽더라도 의심하지 않은 채
甘之而不悔. 그것을 달게 여겨 후회하지 않았다.
主父偃言, 주보언이 말하기를
生不五鼎食, “살아서 다섯 솥에 음식을 담아 놓고 먹지 못하면,
死則五鼎烹, 죽을 때 다섯 솥에 삼겨진다,”라고 하였는데,
卒如其言, 끝내 그 말처럼 되었으니
豈不痛哉.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又楚子觀周, 또 초나라 왕은 주(周)나라에서 군대를 열병 하였으나
受折於孫滿, 왕손만에게 좌절을 당하였고,
霍侯驂乖, 곽광은 천자와 수레에 동승하였다가
禍起於負芒. (천자가)등에 가시를 진 듯이 여긴 데서 재앙이 일어났다.
饕餮之徒, 탐욕스러운 무리는
其流甚衆. 그 부류가 매우 많았다.
唐堯四海之主, 요임금은 천하의 군주였으나
而有汾陽之心, 분수(汾水)북쪽에서 생긴 마음이 있었고,
子晉天下之儲, 왕자진은 천하의 태자였으나
而有洛濱之志. 낙수(洛水)물가에서 노니는 뜻이 있었다.
輕之若脫屣, (그들은 황제의 지위를)가볍게 여기기를 헌신짝 벗어 버리듯이 했고
視之若鴻毛, 대하기를 기러기 털같이 했으니,
而況於他人乎. 하물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야 어떠했겠는가.
是以至人達士, 이 때문에 초탈한 사람과 통달한 선비는
因以晦迹. 그래서 자취를 숨기는 것이다.
或懷釐而謁帝, 어떤 사람은 치국의 도를 지니고 황제를 알현하기도 하지만,
或披褐而負薪. 어떤 사람은 거친 베옷을 입고 땔감을 등에 진다.
鼓枻淸潭, 맑은 못에서 노를 젓기도 하고
棄機漢曲. 한수의 굽이에서 기심(機心)을 버린다.
情不在於衆事, 마음이 잡다한 일에 있지 않으니,
寄衆事以忘情者也. 잡다한 일을 초월의 경지에 맡긴다.
有疑陶淵明詩, 도연명의 시에는
篇篇有酒, 편마다 술이 있다고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吾觀, 내가 보기에는
其意不在酒. 그 뜻이 술에 있지 않다.
亦寄酒爲迹者也. 역시 술에 기탁하여(마음의)자취로 삼은 것이다.
其文章不群, 그의 문장은 무리에서 뛰어나
辭彩精拔, 수사가 정묘하고 빼어나며
跌宕昭彰, 호탕호고 밝아
獨超衆類. 홀로 여러 부류를 넘어섰다.
抑揚爽朗, 문세의 오르내림이 상쾌하고 명랑하여
莫之與京, 그것과 성대함을 겨룰 것이 없으니,
橫素波而傍流, 흰 물결을 가로지르며 두루 흐르고
干靑雲而直上. 푸른 구름 위로 솟구쳐 곧바로 올라간다.
語時事, 당시의 사실을 말한 것은
則指而可想, 지목하여 상상할 수 있고,
論懷抱, 회포를 논한 것은
則曠而且真. 활달하면서도 참되다.
加以貞志不休, 거기에 더하여 뜻을 곧게 하기를 쉬지 않고
安道苦節, 도에 편안하여 절조를 굳게 지켰으며,
不以躬耕爲恥, 몸소 농사짓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不以無財爲病. 재물이 없는 것을 근심하지 않았다.
自非大賢篤志, 스스로가 큰 현자로서 뜻을 독실하게 하여
與道汙隆, 도와 오르내림을 함께할 수 있는 이가 아니면
孰能如此乎.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余素愛其文, 내가 평소에 그의 글을 애호하여
불능석수, 손에서 놓지 못한 채,
尙想其德, 간절히 그 덕을 생각하면서
恨不同時. 동시대에 살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였다.
故加搜校, 그래서(흩어진 시문들을)모으고 교감하여
粗爲區目. 대략적으로 편목을 구분해 놓는다.
白璧微瑕, 백옥의 작은 홈은
惟在閑情一賦, 오로지「한정부」한 편에 있으니,
揚雄所謂, 양웅이 말한 바로는,
勸百而諷一者, “(사마상여의 작품은)백 가지를 칭찬하고 한 가지를 풍자하였다.”라고 하였는데,
卒無諷諫, (도연명의「한정부」에는)끝내 풍자한 것이 없으니
何足搖其筆端. 어찌 그 붓끝을 놀릴 만한 것이었던가.
惜哉. 애석하구나.
亡是可也. 이것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幷麤點定其傳, 아울러 그의 전기를 거칠게나마 고치고 정리하여
編之於錄. 문집에 엮어 놓는다.
嘗謂, 일찍이 다음과 같이 여긴 적이 있었으니,
有能觀淵明之文者, 도연명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馳競之情遣, 치달리며 다투는 마음이 버려지고
鄙吝之意祛, 천박하고 인색한 뜻이 사라지며,
貪夫可以廉, 탐욕스런 자가 청렴해질 수 있고
懦夫可以立. 나약한 자가 뜻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豈止仁義可蹈, 어찌 인의를 따를 만하다거나
抑乃爵祿可辭. 아니면 벼슬을 사양할 만한 데에서 그치겠는가.
不必旁遊太華, 두루 태산과 화산에서 노닐고
遠求枉史, 멀리 노자에게서 구할 필요가 없으리니
此亦有助於風敎也. 이 또한 풍속과 교화에 도움이 있을 것이다.
출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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