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도징사뢰병서(도징사뢰병서)」남조 송(宋) 안연지(顔延之·384~456)

노년의 인생 2024. 9. 5. 20:18

「도징사뢰병서(도징사뢰병서)」

남조 송(宋) 안연지(顔延之·384~456)

 

❖-해제

도연명 사후에 안연지가 뇌문(誄文)을 짓고

‘정절선생(정절선생)’이라는 사시(私謚)를 바쳤다.

‘징사(徵士)’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조정에서 초빙했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소통(蕭統, 501~531)이「도연명전(陶淵明傳)」에서,

“안연지가 후군공조(後軍功曹)라는 벼슬로 심양(潯陽)에 있으면서

도연명과 사이가 좋았다. 뒤에 시안군(始安郡)을 다스리게 되어 지나는 길에

심양에 들렀고 매일 도잠을 찾아가 술을 마셨는데,

갈 때마다 반드시 거나하게 마셔 취하곤 하였다.

안연지가 떠나면서 2만 전을 도연명에게 주고 가자 도연명은 모두 술집에 보내고

이따금씩 가서 술을 마셨다.”라고 하여 도연명과 안연지의 교유 내용을 소개하였다.

 

서문

夫璿玉致美, 선옥은 지극히 아름답지만,

不爲池皇之寶, 도성에서 나는 보배가 아니고

桂椒信芳, 육계와 산초는 참으로 향기롭지만

而非園林之寶, 정원에서 나는 물건이 아니니

豈其樂深而好遠哉. 어찌 그것들이 깊은 곳을 즐기고 먼 곳을 좋아해서이겠는가.

蓋云殊性而已. 아마도 뛰어난 특성일 뿐이라고 하겠다.

故無足而至者, 그러므로 발이 없어도 이르게 되는 것은

物之藉也, 물건의 가치 덕분이고,

隨踵而立者, 남의 발뒤꿈치를 따라 뒤를 잇는 것은

人之薄也. 사람이 천박한 것이다.

若乃巢由之抗行, 소부나 허유의 광한 행실과

夷皓之峻節, 백이나 사호의 높은 절개로는

故已父老堯禹, 본래 요임금·우임금을 나이 든 노인쯤으로 여겼고,

錙銖周漢, 주(周)나라나 한(漢)나라를 가볍게 여겼으나

而緜世寢遠, 세대가 이어지면서 점차 멀어지자

光靈不屬. 빛나는 정신이 계승되지 않았다.

至使菁華隱沒, 뛰어난 정수가 사라지게 되고

芳流歇絶, 아름다운 흐름이 끊기게 되었으니

不亦惜乎. 참으로 애석하지 않은가.

雖今之作者, 비록 오늘날의 은거하는 자들도

人自爲量, 사람마다 각자 기준을 만들어

而首路同塵, 처음 길은(옛날의 은사들과)보조를 맞추지만

輟塗殊軌者多矣, 중도에 멈추거나 길을 달리한 자들이 많으니,

豈所以昭末景, 어찌(옛날 은사들의)마지막 빛을 밝히고

汎餘波乎. 남긴 풍조를 드러내는 방법이겠는가.

有晉徵士尋陽陶淵明, 진나라의 징사인 심양의 도연명은,

南嶽之幽居者也. 여산의 은거자였다.

弱不好弄, 어려서는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고

長實素心. 장성해서는 실로 소박한 마음을 지녔다.

學非稱師, 학문은 선생으로 칭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文取指達. 문장은 뜻을 전달하는 것을 취할 뿐이었다.

在衆不失其寡,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도 독자성을 잃지 않았고

處言愈見其黙. 말하는 데서도 더욱 그 과묵함을 드러내었다.

少而貧苦, 젊어서 가난하고 고생하였으며

居無僕妾. 생활함에 하인도 없었다.

井臼弗任, 물을 긷고 곡식을 찧는 일도 감당치 못했으며

藜菽不給. 명아주와 콩 등의 음식도 넉넉하지 못했다.

母老子幼, 모친은 늙고 자식들은 어려,

就養勤匱. 부양에 힘썼지만 곤궁하였다.

遠惟田生致親之議, 멀리로는 전과(전관)가 어버이에게 극진했던 논의를 생각하게 하고,

追悟毛子捧檄之懷. 모의(모의)가 공문서를 받들었던 마음을 뒤미처 깨닫겠다.

初辭州府三命, 처음에 주(州)의 관청에서 세 차례 임명한 것을 사양하다가

後爲彭澤令, 뒤에 팽택의 현령이 되었으나,

道不偶物, 도(道)가 속물들과 맞지 않아

棄官後好. 벼슬을 버리고 좋아하는 바를 따랐다.

遂乃解體世紛, 마침내 세속의 번잡함에서 몸을 빼고

結志區外, 세상 밖에 뜻을 굳혀,

定迹深棲, 깊은 곳에 행적을 정하니

於是乎遠. 이에(속세와)멀어졌다.

灌畦鬻蔬, 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팔았던 것은

爲供魚菽之祭, 물고기와 콩 등의 제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織絇緯蕭, 신발을 짜고 쑥대 발을 엮었던 것은

以充糧粒之費. 양식의 비용을 충당하려는 것이었다.

心好異書, 마음은 기이한 책을 좋아하였고

性樂酒德, 성정은 술의 공덕을 즐겼으며,

簡棄煩促, 번잡함을 가려내어 버리고

就成省曠. 조용하고 한적음을 이루었다.

殆所謂國爵屛貴. 아마도 “나라의 작위도[도(道)의]존귀함에 의해 버려지고.

家人忘貧者與. 집안 식구도 가난함을 잊게 하였다,”고 한 것이리라.

有詔徵著作郞, 조서가 내려져 저작랑으로 초빙되었지만

稱疾不到.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春秋六十有三, 나이 63세인

元嘉四年月日, 원가 4년(427)모월 모일에

卒於尋陽縣柴桑里. 심양현의 시상리에서 죽었다.

近識悲悼, 가까이에서 알고 지내던 이들은 슬프게 애도 했고

遠士傷情. 먼 곳의 선비들은 가슴 아파했다.

冥黙福應,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명복이 호응하리니

嗚呼淑貞. 아아! 맑고 곧았던 분이었다.

夫實以誄華, 행실은 뇌문으로 빛이 나고

名由諡高, 명성은 시호로 높아지니,

苟允德義, 진실로 도덕과 신의에 부합한다면

貴賤何算焉. 존귀와 비천을 어찌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若其寬樂令終之美, 만역 그의 너그럽고 낙천적이며 생을 잘 마무리한 아름다움과,

好廉克己之操, 청렴함을 좋아하고 사욕을 이겨낸 절조가

有合諡典, 시법(諡法)에 부합함이 있다면,

無愆前志. 이전 사람들의 기록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故詢諸友好, 그래서 벗들에게 자문하니

宜諡曰靖節徵士. 시호를 ‘정절징사(靖節徵士)'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其詞曰. 그 뇌문은 다음과 같다.

 

뇌문(誄文)

物尙孤生, 만물은 특수하게 존재하는 것을 숭상하고

人固介立. 사람은 우뚝하게 배어난 것을 굳게 여긴다.

豈伊時遘, 어찌 그대가 이런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겠으며,

曷云世及. 어찌 대대로 이어진 까닭이었겠는가.

嗟乎若士, 아아! 이분은

望古遙集. 옛 은사를 바라보고 멀리서 만난 것이다.

韜此洪族, 이런 명문 대족임을 감추고

蔑彼名級. 저런 명예와 관직을 멸시했다.

睦親之行, (친족간의)화목하고 친밀한 행실에

至自非敦. 지극함은 자연 힘써서 이룬 것이 아니었다.

然諾之信, 남에게 허락했던 것에 대한 신의는

重於布言. 계포(季布)의 말보다도 무거웠다.

廉深簡潔, 청렴하고 심후하였으며 소탈하고 깨끗하였으며

貞夷粹溫. 올곧고 평탄하였으며 순수하고 온화하였다.

和而能峻, 화합하면서도 준엄할 수 있었고

博而不繁. 해박하면서도 번잡하지 않았다.

依世尙同, (사람들은)세속을 따라 같아지기를 숭상하거나

詭時則異, 시속과 어긋나 특이해짐으로써,

有一於此, 여기에서 한쪽을 차지한 채

兩非黙置, 양쪽이(서로)조용히 놓아두지 않으니,

豈若夫子, 어지 선생처럼

因心違事, 마음에 따라 세상사에서 벗어나고

畏榮好古, 영화를 피하고 옛것을 좋아하며

薄身厚志. 자신을 담백하게 하고 뜻을 두터이 한 것과 같겠는가.

世覇虛禮, 당시의 패자(覇者)들이 겸허하게 예우하였고

州壤推風. 온 고을 사람들이 풍모를 추앙했다.

孝惟義養, 효심은 오직 잘 봉양함에 있었고,

道必懷邦. 벼슬길에 나설 때 반드시 고향을 생각했다.

人之秉彛, 사람으로서의 상도(常道)를 지켜

不隘不恭. 편협하지도 않았고 공손하지도 않았다.

爵同下士, 작위는 하등의 선비와 같았고

祿等上農. 봉록은 상등의 농부와 동등했다.

度量難鈞, 도량은 헤아리기 어려웠고

進退可限. 나아가고 물러남은 기준에 맞았다.

長卿棄官, 사마상여가 관직을 버리고

稚賓自免, 순상이 스스로 물러난 것을

子之悟之, 그대는 깨달았으나

何悟之辯. 어떻게 깨달음을 설명 하겠는가.

賦辭歸來, 「귀거래혜사」를 짓고,

高蹈獨善. 은거하며 홀로 수양했다.

亦旣超曠, 또한 초월하였고 분방하였으니

無適非心. 가는 곳마다 본심에 맞는 바가 아닌 것이 없었다.

汲流舊巘, 예전의 산속에서 물을 길었고

葺宇家林. 고향에서 지붕을 이었다.

晨煙暮靄, 아침 안개와 저녁노을,

春煦秋陰,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서늘함 속에

陳書輟卷, 책을 펼치기도 하고 덮기도 하였으며

置酒絃琴.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거문고를 뜯기도 하였다.

居備勤儉, 생활은 근면과 검소를 구비했으나

躬兼貧病. 몸은 가난과 질병이 겹쳤다.

人否其憂, 사람들은 그 근심을 힘들어하지만

自然其命. 그대는 그것을 운명으로 여겼다.

隱約就閑, 곤궁한 가운데 한적하게 지냈고

遷延辭聘, 유유자적하며 조정의 초빙을 사양했으니

非直也明, 단지 명철함 때문만이 아니었고

是惟道性. 오직 도를 추구하는 본성 때문이었다.

糾纏斡流, 얽히고 방황하는 가운데

冥漠報施. (조물주의)보응과 베풂이 모호하다.

孰云與仁? 누가(하늘은)어진 사람과 함께한다고 했던가?

實疑明智. 명철한 지혜의 말인지 진실로 의심스럽다.

謂天蓋高, 하늘은 높다고 하였는데

胡諐斯義? 어찌하여 이 도리에 어긋나는가?

履信曷憑, 신의를 실천한들 어찌 의지할 만하고,

思順何寘? (하늘에)순응하기를 생각한들 어디에서 받아줄 것인가?

視化如歸, 죽음을 집에 돌아가는 것같이 보았고

臨凶若吉. 재난을 만나도 길한 일로 여겼다.

藥劑弗嘗, 약제를 먹지도 않았고

禱祀非恤. 기도하고 비는 행위도 돌아보지 않았다.

傃幽告終, 저승을 향하며 마지막을 알리고

懷和長畢. 화평한 마음을 지닌 채 영원히 생을 마쳤도다.

嗚呼哀哉. 아아! 슬프도다.

敬述靖節, 공경히 절개를 서술하며

式尊遺古. 다음과 같은 유언을 존귀하게 여긴다.

存不願豊, “살아서 풍요로움을 바라지 않았으니,

沒無求贍. 죽어서도 넉넉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省訃卻賻, 부고를 생략하고 부의를 물리칠 것이며,

輕哀薄斂. 슬픔을 심히 하지 말고 염습을 검소하게 하라.

遭壤以穿, 만나는 땅에 무덤을 파서,

선장이폄. 바로 장사지내고 하관하라.”

嗚呼哀哉. 아아! 슬프도다.

深心追往, 깊은 마음에서 지난 일을 추억하며

遠情逐化. 오랜 우정으로 죽음을 추모한다.

自爾介居, 그대가 홀로 지내고

及我多暇, 내가 한가로움이 많아지면서부터,

伊好之洽, 우호가 깊어져

接閻鄰舍. 골목을 가까이하고 집을 이웃하였지.

宵盤晝憩, 밤에는 노닐고 낮에는 휴식한 것이

非舟非駕. 배도 아니었고 수레도 아니었다.

念昔宴私, 생각해 보니 옛날에 일과가 끝난 뒤의 술자리에서

擧觴相誨. 술장을 들고 서로 깨우쳐 주었지.

獨正者危, ‘혼자만 바르면 위태롭고

至方則閡. 지극히 네모나면 장애가 됩니다.

哲人卷舒, 명철한 사람이 은거하고 출사한 것이

布在前載. 이전의 전적에도 실려 있습니다.

取鑒不遠, 거울로 삼을 것이 멀리 있지 않으니

吾規子佩. 나의 충고를 그대는 받아 주십시오.”라고 하자

爾實愀然, 그대는 실로 얼굴빛을 바꾸고

中言而發. 심중의 말로 이렇게 말했지요.

違衆速尤, “사람들과 어긋나면 허물을 재촉하고

迕風先蹶. 풍조를 거스르면 먼저 넘어지지요.

身才非實, 신체와 재주는 견실한 것이 아니고

榮聲有歇. 영화와 명성도 그치는 날이 있습니다.”

叡音永矣, 지혜로운 말씀이 멀어졌으니,

誰箴余闕. 누가 나의 결점을 훈계해 줄 것인가.

嗚呼哀哉. 아아! 슬프도다.

仁焉而終, 어진 분이었는데 생을 마쳤고

智焉而斃. 지혜로운 분이었는데 죽었도다.

黔婁旣沒, 검루가 이미 죽었고

展禽亦逝. 전금도 또한 떠났다.

其在先生, 그들은 선생에게 있어서

同塵往世. 옛날에 함께 어울렸을 이들이리라.

旌此靖節, 이‘정절(靖節)’이란 시호를 올리니,

加彼康惠. 저(검루의)‘강(康)’이나(전금의)‘혜(惠)’라는 시호를 넘어서리라.

嗚呼哀哉. 아아! 슬프도다.

출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