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진서(晉書)·은일전(隱逸傳)·도잠(陶潛)』당(唐) 방현령(房玄齡·579~648)

노년의 인생 2024. 9. 11. 12:23

『진서(晉書)·은일전(隱逸傳)·도잠(陶潛)』

당(唐) 방현령(房玄齡·579~648)

 

❖-해제

 

당 방현령이 편찬한 『진서(晉書)』에 실려 있는 도연명의 전기이다.

심약이 편찬한 『송서』의 「도잠전」이나 소통이 기술한「도연명전」과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만 간간이 새로운 내용이나 일화가 추가되어 있다.

앞 전기들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여겨 전문을 역주하였다.

陶潛字元亮, 도잠은 자가 원량인데,

大司馬侃之曾孫也. 대사마 도간(陶侃)의 증손이다.

祖茂, 조부 도무(陶茂)는,

武昌太守. 무창태수를 지냈다.

潛少懷高尙. 도잠은 젊어서부터 고상한 뜻을 지녔다.

博學善屬文, 박학하였고 글을 잘 지었으며,

穎脫不羈. 세속에서 벗어나 얽매이지 않았다.

任眞自得, 진솔함에 맡겨 스스로 편안하였으며,

爲鄕隣之所貴. 고을의 이웃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嘗著五柳先生傳. 일찍이 「오류선생전」을 지어

以自況曰. 자신을 비유하였다.

其自序如此, 그가 직접 서술한 것이 이와 같았는데,

時人謂之實錄.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以親老家貧, 모친은 늙고 집안은 가난하였기 때문에,

起爲州祭酒, 나서서 강주(강주)의 좨주가 되었으나

不堪吏職. 관직을 감당하지 못해

少日自解歸. 며칠 안 되어 스스로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州召主簿, 강주에서 주부로 불렀으나

不就, 나아가지 않고

躬耕自資, 몸소 농사를 지어 자급하다가

遂抱羸疾. 드디어 쇠약해져 병을 갖게 되었다.

復爲鎭軍建威參軍. 다시 진군참군과 건위참군이 되었다.

謂親朋曰, 친구들에게 이르기를,

聊欲絃歌, “그런대로 현령이나 하면서

以爲三徑之資, 은거의 비용을 마련하고자 하는데

可乎? 그럴 수 있을까?”라고 하자

執事者聞之, 담당자가 듣고

以爲彭澤令. 팽택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재현, 현에 있으면서

悉令種秫穀曰, 아전들에게 명하여 모두 차조를 심게 하고 이르기를,

令吾常醉於酒, “만약 내가 늘 술에 취할 수만 있다면

足矣. 만족하겠다.”하고 하였다.

妻子固請種秔, 아내가 메벼를 심을 것을 간청하였다.

乃使二頃五十畝種秫, 이에 2경 50무에는 차조를 심고

五十畝種秔, 50무에 메벼를 심게 하였다.

素簡貴, 평소에 오만하고 고귀하여

不私事上官. 사사로이 고관들을 섬기지 않았다.

郡遣督郵至, 군청에서 독우를 파견하여 이르자,

縣吏白應束帶見之, 현의 아전이 관디를 매고 그를 뵈어야 한다고 아뢰었다.

潛嘆曰, 도잠이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吾不能爲五斗米, “내가 다섯 말의 녹봉을 위하여

折腰, 허리를 굽히고

拳拳事鄕里小人邪. 굽실거리며 시골의 소인배를 섬길 수 없다.”라고 하였다.

義熙二年, 의희 원년(405)에

解印去縣. 인끈을 풀고 현을 떠났다.

乃賦歸去來, 마침내「귀거래혜사」를 지었는데

其辭曰. 그 가사가 다음과 같다.

頃之, 얼마 뒤에

徵著作郞, 저작랑으로 초빙되었으나

不就. 나아가지 않았다.

旣絶州郡覲謁, 주와 군의 사람들 만나는 일을 끊었지만

其鄕親張野及周旋人羊松齡寵遵等, 고향친구인 장야, 교류하던 양송령·방준 등이

或有酒要之. 간혹 술을 마련하여 초대하였다.

或要之共至酒坐, 간혹 초대하여 함께 술자리에 가면

雖不識主人, 비록 주인과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亦欣然無忤, 또한 기쁜 마음으로 거슬림이 없었고

酣醉便反. 거나하게 취하면 곧 돌아갔다.

未嘗有所造詣, 일찍이 찾아가는 곳이 없었고

所之, 가는 곳은

唯至田舍及廬山, 오로지 농막이나 여산에 이르러

遊觀而已. 둘러보는 것뿐이었다.

刺史王弘以元熙中臨州, 자사 왕홍이 원희 연간에 주에 부임하였는데,

甚欽遲之. 도잠을 매우 공경하고 우러렀다.

後自造焉, 뒤에 직접 찾아갔으나

潛稱疾不見. 도잠은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다.

旣而語人云, 얼마 뒤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我性不狎世, “나는 본성이 세속에 영합하지 않는데다가

因疾守閑, 병으로 한적함을 지키는 것이지,

幸非潔志慕聲. 본래 뜻을 고결하게 하고 명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豈敢而王公紆軫爲榮邪. 어찌 감히 왕홍의 왕림을 영예로 여기겠는가.

夫謬以不賢, (나의)현명하지 못함으로 일을 그르친다면

此劉公幹所以招謗君子, 이것은 유공간이(지적한)‘군자께 비방을 불러오는 것이니,

其罪不細也. 그 잘못이 작지 않습니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弘每令人候之, 왕홍은 매번 사람을 시켜 도잠을 찾아뵙게 하다가

密知當往廬山. 도잠이 장차 여산에 갈 것을 몰래 알았다.

乃遣其故人龐通之等齎酒, 이에 도잠의 친구인 방통지 등을 시켜 술을 가지고 가서

先於半道要之. 먼저 중간에서 그를 기다리게 하였다.

潛旣遇酒, 도잠이 술을 만나자

便引酌野亭, 바로 들판의 정자에서 술잔을 들었고

欣然忘進. 즐거워져 산에 갈 생각을 잊었다.

弘乃出與相見, 왕홍이 이때 나타나서 서로 만났고

遂歡晏窮日. 마침내 종일토록 즐겁게 술자리를 가졌다.

潛無履, 도잠이 신발이 없자

弘顧左右爲之造履. 왕홍이 수행원을 돌아보며 그에게 신발을 만들어 주라고 하였다.

左右請履度, 수행원이 신발의 치수를 재겠다고 하자

潛便於坐申脚令度焉. 도잠은 바로 자리에서 다리를 뻗어 재게 하였다.

弘要之還州, 왕홍이 관사로 가자고 요청하여

問其所乘, 그가 타고 온 것을 묻자,

答云, 대답하기를

素有脚疾, “평소 다리에 병이 있어

向乘藍輿, 아까 남녀를 타고 왔는데,

亦足自反. 그것으로도 직접 돌아가기에 충분하오,”라고 하였다.

乃令一門生二兒共轝之之州, 이윽고 같은 문하생인 두 아이에게 남녀를 메게 하여 관사에 이르렀는데

而言笑賞適, 담소가 즐겁고 편안하였으며

不覺其有羨於華軒也. 화려한 수레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弘後欲見, 왕홍은 그 뒤에도 도잠을 만나고 싶으면

輒於林澤間候之, 번번이 숲이나 연못 즈음에서 기다렸고

至於酒米乏絶, 술이나 쌀이 떨어지면

亦時相贍. 또한 수시로 보내주었다.

其親朋好事, 그의 친구 가운데 관심 있는 이들이

或載酒肴而往, 간혹 술과 안주를 싣고 찾아가면

潛亦無所辭焉. 도잠도 역시 사양하는 경우가 없었다.

每一醉, 매번 한차례 취하면

則大適融然, 매우 유쾌하고 화기애애하였다.

又不營生業, 또 생업에 힘쓰지 않아

家務悉委之兒僕. 집안일은 모두 하인들에게 맡겼다.

未嘗有喜慍之色, 일찍이 기뻐하거나 성내는 기색이 없었고

惟遇酒則飮, 간혹 술이 없어도

時或無酒, 간혹 술이 없어도

亦雅詠不輟. 역시 우아하게 시 읊기를 그치지 않았다.

嘗言, 일찍이 말하기를,

夏月虛閑, “여름철 조용하고 한가한 때

高臥北窗之下, 북쪽 창 아래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데

淸風颯至, 시원한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면

自謂羲皇上人. 나 자신을 일러 복희(伏羲)임금 이전의 사람이 라고 했지.”라고 하였다.

性不解音, 성향이 음률을 잘 알지 못했지만

而畜素琴一張, 소박한 거문고 한 틀을 가지고 있었는데

絃徵不具. 줄이 갖춰서 있지 않았다.

每朋酒之會, 매번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則撫而和之曰, 매번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旦識琴中趣, “그저 거문고의 정취를 알면 될 일이지,

何勞絃上聲. 어찌 현 위의 소리로 수고로울 것이 있겠나.”라고 하였다.

以宋元嘉中卒, 남조 송 원가 연간(427)에 죽었는데,

時年六十三. 당시 나이가 63세였다.

所有文集並行於世. 남아 있던 문집이 모두 세상에 전한다.

출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