罷 露 臺
(파할 파, 이슬 로, 대 대)
지붕 없는 정자 만들기를 그만 두다.
정자 하나를 만드는 예산이 열 집의 재산과 같으므로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민정에 마음 쓰는 것을 이르는 말.
효문황제는 고조의 여덟 아들 가운데 넷째이다. 이른 바
중자(中子)이다. 고조가 11년 봄에 진희의 군사를 대파하면서
산서성을 평정해 대왕(代王)으로 봉하였다.
당시는 유혈극이 심심찮게 벌어졌으므로 한시도 안심할 수 없었
다. 여씨(呂氏)들의 득세로 천하가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대왕은
어느 날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에 골몰했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래서 귀갑(龜甲)을
태워 점을 쳤는데 '대횡(大橫)'이라는 괘사를 얻은 것이다. '대횡'
이라는 점괘가 나타났으니 이는 머지 않아 대왕이 천자가 될 징
조입니다. 하왕조의 우왕을 계승하여 제위(帝位)에 오른 계(啓)처
럼 부업(父業)을 빛낼 것입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대왕은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전한 제4대
효문 황제는 임금이 호사스러우면 백성의 부담이 커진다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검은 비단옷을 입어 검소함은 솔선했고, 부인도
옷을 땅에 끌지 못하게 했다. 황제가 군문을 찾았을 때 장군이
말했다. "군중에서는 수레를 달릴 수 없습니다."
황제는 스스로 말을 끌고 들어가며 오히려 장군을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부드러운 마음과 덕으로 백성을 교호해서 공경대부도
풍류를 자제했다.
남의 과실은 말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상하가 예의에 맞는 풍속을
이루어 국가가 평안했다. 황제가 지붕 없는 정자를 만들고자
설계를 시켰더니 예산을 백 냥이나 책정했다. 열 집의 재산과
맞먹는 돈이었다.
황제는 자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수 없다고 토대를 짓는
것을 중지시켰다. 그래서 민정(民政)에 마음을 쓰는 것을
가리켜 '파로대(罷露臺)'라고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