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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관련작품「방도공구택 병서(訪陶公舊宅 幷序)」당(唐) 백거이(白居易)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관련작품「방도공구택 병서(訪陶公舊宅 幷序)」당(唐) 백거이(白居易) ❖-해제당(唐) 원화(元和) 11면(816년), 백거이 45세에 도연명의 고택을 방문하고 지은 것이다.「서문」에서,“지금 여산에 유람 왔다가 시상을 지나 율리를 방문하였다.(今遊廬山, 經柴桑 過栗里.)” 라고 한 데서, 당시 도연명의 고택은율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역주서문余夙慕陶淵明爲人, 내가 일찍부터 도연명의 사람됨을 사모하여,往歲渭上閑居, 옛날에 위수(渭水)가에서 한가로이 지내며嘗有效陶體詩十六首. 도연명의 시체(詩體)를 본뜬 16수의 시를 지은 적이 있었다.今遊廬山, 지금 여산에 유람 왔다가經柴桑, 시상을 지나過栗里. 율리를 방문하였다.思其人,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訪其宅, 그의 옛집을 찾으니不能黙黙..

한시 2024.09.02

오류선생 전기「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오류선생 전기「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해제도연명이 자신의 본모습과 이상을 결합하여 제시한 자화상이라고 할 만한 글이다.세속의 영달에 대한 초월과 현실적인 고난에 대한 달관을 검루에 비겨, “빈천에 근심하지 않고, 부귀에 급급하지 않았다.(不戚戚於貧賤, 不汲汲於富貴.)라고한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이런 이유로 글의 말미에서 보였듯이, 고대 전설상의 제왕들이 펼쳤던 태평성대를 사는 사람으로 자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 역주先生不知何許人也, 선생은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고,亦不詳其姓字, 또한 그의 성과 자도 잘 모르겠으나,宅邊有五柳樹, 집 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어,因以爲號焉. 그래서 그것으로 호를 삼았다.閒靜少言, 고상하고 조용하여 말이 적었고,不慕榮利. 영리를 부러워하지 않았다.好讀書..

한시 2024.09.02

진나라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의 장사(長史)를 지낸 돌아가신 맹부군(孟府君)전기「진고정서대장군장사맹부군전(晋故征西大將軍長史孟府君傳)」

진나라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의 장사(長史)를 지낸 돌아가신 맹부군(孟府君)전기「진고정서대장군장사맹부군전(晋故征西大將軍長史孟府君傳)」 ❖-해제이 글은 도연명이 돌아가신 외조부 맹가(孟嘉)를 위해지은 것이다.맹가는 오랫동안 환온(桓溫)의 막료를 지내다가 마지막으로 장사(長史)를 지냈다.도연명은 그에 대한 행적을 기록하면서 먼저 집안의 가계를 제시하고 이어인품을 칭송하였다.서술 내용은 그가 이룬 업적보다는 명사로서의 풍모 등에 관한일화를 위주로 기록하고 있다.도연명의 모친은 맹가의 넷째 딸 이었다. ❖- 역주君諱嘉, 부군은 휘자가 가(嘉)이고字萬年, 자가 만년(萬年)으로,江夏鄂人也. 강하 악(鄂) 출신이다.曾祖父宗以孝行稱, 그의 증조부인 맹종(孟宗)은 효행으로 칭송받았으며,仕吳司空. 오(吳)나라에서 사공을 ..

한시 2024.09.01

「도원가(桃源歌)」고려(高麗) 진화(陳澕, 생몰년 미상)

「도원가(桃源歌)」고려(高麗) 진화(陳澕, 생몰년 미상) ❖-해제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근거하여 고려 시대중반기의 당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려 낸 시이다.이 시의 전반부는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묘사하고 있으나 후반부에서는 세금을 수탈하는 아전과 핍박받는 백성들을 대비하여 읊고 있다.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발함으로써 시의 풍자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 역주丱角森森東海之蒼煙, 동남동녀는 동해의 아득한 안개 속에 가물가물 하고,紫芝曄曄南山之翠巓. 자줏빛 지초는 남산의 푸른 봉우리에서 빛난다.等是當時避秦處, 이와 같은 시기에 진나라를 피할 곳은,桃源最號爲神仙. 도화원을 으뜸으로 불러 신선 세계라 하였네.溪流盡處山作口, 계곡물 다한 곳에서 산에 입구가 나 있는데,土膏水軟多良田. 땅..

한시 2024.09.01

「도원행(桃源行)」북송(北宋) 왕안석(王安石)

「도원행(桃源行)」북송(北宋) 왕안석(王安石) ❖-해제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쓴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도화원의 고사(故事)를 시문으로 남겼다.대표적인 작품으로 왕유의 「도원행(桃源行)」한유의 「도원도(桃源圖)」왕안석의 「도원행(桃源行)」등이 있다.왕안석은 그의 시에서 도화원을 신선 세계가 아닌, 아들 손자를 낳아 대를 이어 살면서 혼란에 고통 받지 않는 이상적 생활 터전으로 그리고 있다. ❖- 역주望夷宮中鹿爲馬, 망이궁 안에서 사슴은 말이 되었고,秦人半死長城下. 진나라 사람들은 장성 쌓다가 반은 죽었다.避時不獨商山翁, 혼란한 때를 피했던 이들이 상산의 노인들만이 아니었으니,亦有桃源種桃者. 또한 도화원에서 복숭아 심던 이들도 있었다.此來種桃經幾春, 이후로 복숭아 심은 지 몇 해가 흘렀을까,採花食..

한시 2024.08.31

「도화원시(桃花源詩)」도연명(陶淵明)

「도화원시(桃花源詩)」도연명(陶淵明) ❖-해제이 작품은 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이상(理想)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압박과 전란이 없는 곳에서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바람과이상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 역주嬴氏亂天紀, 진시황이 하늘의 법도를 어지럽혀,賢者避其世. 현자들이 세상을 피했다.黃綺之商山, 하황공과 기리계는 상산으로 갔고,伊人亦云逝. 이 사람들도 역시 떠났다.往跡浸復湮, 떠난 자취는 점차 다시 사라졌고,來逕遂蕪廢. 왔던 길도 마침내 거칠어져 없어졌네.相命肆農耕, 서로 알려서 농사에 힘쓰고,日入從所憩. 해지면 쉴 곳으로 돌아간다.桑竹垂餘蔭, 뽕과 대나무는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菽稷隨時藝. 콩과 기장은 때에 맞춰 심는다.春蠶收長絲, 봄누에 쳐서 긴 명주실 거두고,秋熟靡王稅..

한시 2024.08.31

복숭아꽃이 핀 수원(水源)의 기문「도화원기(桃花源記)」

복숭아꽃이 핀 수원(水源)의 기문「도화원기(桃花源記)」 ❖-해제421년 도연명의 나이 57세에 지은 작품이다.동진(東晉) 왕조가 송(宋)으로 교체되고 동진의 마지막 군주인 공제(恭帝)가시해된 후 현실에 대한 절망과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복합되어 나온걸작으로 「도화원시(桃花源詩)」와 함께 지어졌다.노자와 장자가 추구한‘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오랜 농촌 생활 가운데서 얻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살려서 그려낸도화원은, 이후 동양적 유토피아의 전형(典型)이 되었다. ❖- 역주晉太元中, 진나라 태원 연간에,武陵人捕魚爲業, 무릉 사람이 고기를 잡아 생활하였는데,綠溪行, 시내를 따라 올라가다가,忘路之遠近. 길을 얼마나 왔는지 잊어버렸다.忽逢桃花林, 홀연 복숭아나무 숲을 만났는데,夾岸數百步. ..

한시 2024.08.31

「독귀거래사(讀歸去來辭)」고려(高麗) 이색(李穡, 1328~1396)

「독귀거래사(讀歸去來辭)」고려(高麗) 이색(李穡, 1328~1396) ❖-해제이색이 조선 개국 후에 은거하면서 지은 시이다.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마지막 연을 그대로 끌어다 시의 첫 구로 쓰고 있음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된다.마지막 구절에서 ‘문 닫고 그저「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는다’라고 하여 첫 구절에서 밝힌 ‘저 천명을 즐기니 다시 무엇을 의심 하리오’ 라는 달관을 배우고자 하는 노년의 지향을 밝히고 있다.시구 중에 ‘산하개(山河改)’로 왕조 교체를 의미하고 ‘문항요료(門巷寥寥)’로 망국지민(亡國之民)으로서의 고독한 신세를 의미하고, ‘일월지(日月遲)’로 자신의 노년을 의미하고 있다. ❖- 역주樂夫天命復奚疑, ‘저 천명을 즐김에 다시 ..

한시 2024.08.31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고려(高麗) 이인로(李仁老, 1152~1220)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고려(高麗) 이인로(李仁老, 1152~1220) ❖-해제이 글도 “도연명의「귀거래해사」의 운을 따라 구성하였지만 의경(意境)은 소식의「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를 따른 것이다.이인로의 경우도 소식처럼 당시에 그가 처한 환경[무신집권으로 인한 정치적 좌절 등]때문이었겠지만 도연명이 「귀거래사」에서 보인 담담하고 고상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그러나 이 글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운한 우리나라 최초의 작품이라는데에 의미가 있다. ❖- 역주歸去來兮. 돌아가리라.陶潛昔歸吾亦歸. 도잠이 옛날에 돌아갔듯이 나 또한 돌라가리라.得隍鹿而何喜, 해자의 사슴을 얻은들 무엇이 기쁘며,失塞馬而奚悲. 변새의 말 잃은 들 어찌 슬프겠는가.蛾赴燭而不悟, 나방은 촛불에서 뛰어들면서도 깨닫지 못하고,駒過隙而..

한시 2024.08.30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북송(北宋) 소식(蘇軾, 1036~1101)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북송(北宋) 소식(蘇軾, 1036~1101) ❖-해제소식이 「서문」에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운하여 글을 지었는데 무하유지향을 집으로 삼았다” 라고 하였듯이「귀거래사(歸去來辭)」의 운자에 맞춰 글을 지었지만 내용은 다른 방향으로 구성하였다.즉 그가 돌아가고자 한 곳은 도연명이 말한 ‘전원’이 아니고 정신적 안식처인 ‘무하유지향’임을 밝히고 있다.당시에 그가 처한 극한 환경[정치적 좌절과 오지유배 등] 때문이었겠지만, 도연명이「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보인 담담하고 고상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운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역주서문子瞻謫居昌化, 내가 창화에 유배되어 머물면서追和淵明歸去來辭, 도연명의 「귀..

한시 202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