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징사뢰병서(도징사뢰병서)」남조 송(宋) 안연지(顔延之·384~456) ❖-해제도연명 사후에 안연지가 뇌문(誄文)을 짓고 ‘정절선생(정절선생)’이라는 사시(私謚)를 바쳤다.‘징사(徵士)’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조정에서 초빙했지만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소통(蕭統, 501~531)이「도연명전(陶淵明傳)」에서, “안연지가 후군공조(後軍功曹)라는 벼슬로 심양(潯陽)에 있으면서 도연명과 사이가 좋았다. 뒤에 시안군(始安郡)을 다스리게 되어 지나는 길에 심양에 들렀고 매일 도잠을 찾아가 술을 마셨는데,갈 때마다 반드시 거나하게 마셔 취하곤 하였다.안연지가 떠나면서 2만 전을 도연명에게 주고 가자 도연명은 모두 술집에 보내고이따금씩 가서 술을 마셨다.”라고 하여 도연명과 안연지의 교유 내용을 소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