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宮詞궁사-허난설헌(許蘭雪軒)

노년의 인생 2025. 3. 7. 00:12

宮詞궁사-허난설헌(許蘭雪軒)

궁녀의 노래

 

11.

避暑西宮罷受朝(피서서궁파수기)

더위 피해 서궁에서 조회를 마쳤는데

曲欄初展碧芭蕉(곡란초전벽파초)

난간에는 파초 새싹이 새파랗게 퍼졌네.

閑隨尙藥圍碁局(한수상약위기국)

한가롭게 태의를 따라 바둑을 두고는

賭得珠鈿綠玉翹(도득주전녹옥교)

구슬 새긴 옥비녀를 내기해서 얻었네.

 

12.

天廚進食簇金盤(천주진식족금반)

부엌에서 수라상을 차려 올리자

香果魚羹下筯難(향과어갱하저난)

향그런 과일과 어죽 사이에 머뭇거리시네.

徐喚六宮分退膳(서환육궁분퇴선)

천천히 육궁 불러 물림상을 나눠 주시자

旋推當直女先飡(선추당직여선손)

되물려서 당직 든 나인에게 먼저 먹게 하네.

 

13.

氷簟寒多夢不成(빙점한다몽불성)

싸늘한 대자리가 너무 차가워 꿈도 못꾸고

手揮羅扇撲流螢(수휘라선박류형)

비단 부채만 부치며 날아가는 반딧불을 쫓네.

長門永夜空明月(장문영야공명월)

장문궁은 밤도 길어 달빛만 밝은데

風送西宮笑語聲(풍송서궁소어성)

서궁의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오네.

 

14.

綵羅帷幕紫羅茵(채라유막자라인)

화려한 비단 장막에 붉은 비단보료

香麝霏微暗襲人(향사비미암습인)

짙은 사향 내음이 은은히 몸에 스며드네.

明日賞花留玉輦(명일상화유옥련)

내일은 꽃구경하려고 가마를 가져다 놓고는

地衣簾額一時新(지의염액일시신)

깔개에다 발까지 한꺼번에 손질하네.

 

15.

看修水殿種芙蓉(간수수전종부용)

수전을 손질하고 연꽃을 심으라 분부하여

舁下羅函出九重(여하나함출구중)

비단상자에 받들고 대궐을 나왔네.

試着綵衫迎詔語(시착채삼영조어)

채색 적삼 입고서 조서를 맞으려니

翠眉猶帶睡痕濃(취미유대수흔농)

눈썹에는 아직도 졸던 자국이 짙구나.

 

16.

鴨爐初委水沈灰(압로초위수침회)

향로에다 물 부어 재를 적시니

侍女休粧掩鏡臺(시녀휴장엄경대)

시녀가 단장 마치고 경대를 덮네.

西苑近來巡幸少(서원근래순행소)

서원에는 요즘 임금님의 순행이 드물어

玉簫金瑟半塵埃(옥소금슬반진애)

퉁소와 비파에 먼지가 쌓였네.

 

17.

新擇宮人直御床(신택궁인직어상)

새로 간택된 궁녀가 임금님을 모시니

錦屛初賜合歡香(금병초사합환향)

병풍을 둘러치고 합환의 은총을 내리셨네.

明朝阿監來相問(명조아감내상문)

날이 밝아 아감님이 어찌 되었냐 물으니

笑指胸前小佩囊(소지흉전소패낭)

가슴에 찬 노리개 주머니를 웃으며 가리키네.

 

18.

金鞍玉勒紫遊韁(금안옥늑자유강)

금안장에 옥굴레 붉은 고삐 느슨히 잡고

跨出西宮入未央(과출서궁입미앙)

서궁에서 타고나와 미앙궁으로 들어가네.

遙望午門開雉扇(요망오문개치선)

멀리서 남문을 바라보니 치미선이 비껴져

日華初上赭袍光(일화초상자포광)

햇살이 비치자 곤룡포가 붉게 비치네.

 

19.

西宮近日萬機煩(서궁근일만기번)

서궁은 요즘 정사가 번잡해져

催喚昭容啓殿門(최환소용계전문)

자주 소용을 불러 대궐문을 열게 하네.

爲報榻前持燭女(위보탑전지촉녀)

임금님 앞에서 촛불 받든 여관이

漏聲三下紫薇垣(누성삼하자미원)

자미원에서 물시계가 세 번이나 울렸다 아뢰네.

 

20.

當夜中官抱御書(당야중관포어서)

밤이 되자 내시가 책을 끼고 들어와

玉籖抽付卷還舒(옥첨추부권환서)

서산을 빼서 놓고는 접었다 폈다 하네.

慇懃護惜金蓮燭(은근호석금련촉)

은근히 안스러워 연꽃 촛불 가지고

學士歸時送直廬(학사귀시송직려)

학사님 돌아갈 때에 상직방까지 배웅하였네.

[출처]許蘭雪軒 詩集 허경진 옮김